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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가의 서랍장/사이드프로젝트 쓸어담기 30일

쓸어담기 17일차, 용서

by 꽃비내린 2020. 3. 9.



같은 실수라도 남이 저지를 때보다 내가 저지를 때 더욱 가혹하게 책망한다. 남들은 순간의 부끄러움은 금방 잊혀지는데 반해 나는 두고 두고 후회한다.

진심으로 나를 용서했던 적이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이 얘기를 꺼내고 싶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어머니가 없는 일상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교문 앞을 나서려 했을 때 어머니가 그곳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무척이나 싫어하셨기에 자식들에게 내 앞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하셨다.

어린 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만난 것이 두려우면서도 오랜만에 본 어머니를 모른척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에게 음료수를 주셨던 것 같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들키면 안된다는 생각에 길가에 몰래 버리고 왔다. 어머니는 집에 도착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물쭈물 말을 못하는 우리에게 어머니가 싫으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왔다갔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으셨는지 늦은밤 술에 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오셨다. 거실에 앉혀 놓고 어머니를 몰래 만난 우리에게 배신자라고 말하셨다.

실망했다, 배신자다, 내 집에 들어오게 하지마라 그 수많은 말들이 쏟아지는 동안 나는 내 의지로 어머니를 데려온 것도 아닌데 우리 둘에게만 모질게 구는 것에 억울해 했다.

그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못된 아이로 나를 정의했던 것 같다. 한동안 외면했던 그 날을 어렵사리 꺼내어 9살의 나와 마주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그 상황에 놓인 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너무 어려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나이에 그렇게 행동했던 건 그게 최선이었다고

나를 용서한 그날부터 그 기억을 떠올려도 더 이상 아프지 않는다. 다만 그때의 혼란스러웠던 내가 가여워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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