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재중 통화입니다."
뚜우-
"잘 지내?"
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긴장됐는지 사뭇 딱딱한 말투였다. 나는 이 메시지가 진짜인가 긴가민가하며 수화기를 귀에 바싹 붙들었다.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는 인터랙티브 전시회로 실제 관객들이 남긴 통화 메시지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관객은 9개의 전화기가 설치된 방에서 따르릉 울리는 전화기를 받고 누군가의 메시지를 듣기만 하면 된다. 나는 이 전시에서 4명의 사람을 만났다. 이별한 사람에게 전하지 못한 말, 사랑하는 이에 대한 고백, 외로움, 불안함을 속삭이듯 전달했다. 누군가의 사연을 통화라는 매개체로 듣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전시회 한편에는 부스가 있는데 거기선 어떤 말이든 메시지로 남길 수 있다. 설레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부스 안에 들어갔다. 문을 닫자 부스 안은 꽤 적막했다. 문뜩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화기를 들었다. "파도 소리가 시작되면 메시지를 남기세요."라는 친절한 안내가 나오고 잠시 후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지나가는 전시회 사람입니다."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막상 말을 하려고 하니 울컥한 감정이 올라온 것이다.
목이 메여 몇초간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한마디씩 힘주어 얘기했다. 취업이 잘 안되서 스스로 자신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언젠가 취업하고 나면 이 기분도 괜찮아질거라 생각한다고. 익명의 사람에게 전한다는 생각에 솔직한 감정이 나왔던 것 같았다. 수화기를 놓고 부스 밖으로 나오면서 왜 메시지의 대부분이 힘든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퍼포먼스의 불과한 전시이지만 부스에서 만큼은 사람들이 익명의 누구에게라도 심정을 알아주길 원했던 것이 아닐까.
보통의 거짓말이란 전시회를 보는게 주된 이유였지만 여러모로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는 세상 끝과 부재중 통화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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