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시회를 다녀가다/오늘의 전시회

디자이너의 우상,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by 꽃비내린 2020. 2. 28.

 

 

출처: http://www.sac.or.kr/SacHome/exhibit/detail?searchSeq=41210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 특별전을 방문했다. 카스틸리오니는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이라 하는데, 디자인에 문외한인 나로선 생소했다. 다만 이 전시가 주로 제품 디자인을 다루는 만큼 서비스 디자인의 관점에서 색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방문하게 됐다.

 

거실에서 읽기 좋아하는 아내의 일상을 위해 고안한 조명, Arco Archi Stand Light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의 삶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킬레 카스틸리오니는 큰 형 리비오와 둘째 형 피에르 지아코모와 함께 밀라노의 한 스튜디오에서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카스틸리오니 형제는 한동안 실험적인 산업디자인을 작업했지만 1952년 큰 형 리비오는 시청각 및 조명 분야쪽에 주력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떠나면서 남은 두 형제가 스튜디오를 이끌었다. 아킬레와 피에르 지아코모 형제는 산업디자인 관련 국제 컨퍼런스에 적극 참여했고 5개의 황금콤파스상(Compasso d`oro, 이탈리아 최고 디자인상)을 받았다.

 

카스틸리오니 형제의 스튜디오를 재현해낸 전시

 

1968년 피에르 지아코모가 죽음을 맞이한 후, 아킬레는 30년간 설치작품과 제품 디자인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4개의 황금콤파스상을 수상했다. 2002년 밀라노에서 사망한 후 그의 작품은 이탈리아 문화재청에 등록되었다.

 

전시회는 카스틸리오니 형제들의 디자인 원칙을 세 가지로 나누어 작품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게 구성되었다.

 

첫째는 '창조의 과정(The Creative Process)'으로, 카스틸리오니는 디자인의 접근을 '5W1H'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했다. 작품에 사용된 재료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일상에서 사용되는 제품의 일부를 활용했다. 원래는 다른 용도로 사용된 사물을 사물 그 자체의 의미이라는 관점에서 분해되고 재구성해놓은 것이다. 이를 예술 분야에서 쓰는 용어로 '레디메이드(Ready-Made)라고 부른다. 친숙한 사물들의 일부분이 들어간 그의 작품들을 보다보면 디자인이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트렉터 의자에서 영감을 받은 Mezzadro

 

둘째는 '형태-기능(Form-Function)'으로, 카스틸리오니 형제는 사람들이 실제로 물건을 사용할 때의 행동에 주된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은 사물의 존재 이유가 기능에 있으며, 불필요한 형태적 특징이 기능을 억누르면 안된다고 믿었다. 여기서 만나는 작품들은 카스틸리오니의 인간적인 관심이 잘 드러난다. 가령, 유리잔 아래에 고무 테두리를 둘러 만든 포세이트(Posate)는 유리잔을 꺼내거나 놓을 때 유리잔끼리 부딪힐 때 나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고무 테두리를 넣은 유리잔 Posate

 

지비지아나(Gibigiana)의 탄생 배경은 꽤나 재미있다. 늦은 밤 부부가 한 침대에 자려 할 때 누군가는 계속 깨어 있고 싶을 수 있다. 그렇다고 책을 읽으려 스탠드를 키면 눈부심에 잠을 못자게 되어 스탠드를 키니 마니 하며 싸움이 날 수 있다. 카스틸리오니도 이런 문제로 아내와 다투게 되자, 눈부심이 없는 스탠드를 고안해낸다. 아이들이 거울에 빛을 비추며 노는 모습을 본 그는 전구를 하단에 설치하고 위쪽 거울에 빛이 반사하게 두어 원하는 위치에만 정확하게 비출 수 있게 했다. 사소한 문제에도 놓치지 않고 디자인적으로 해결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거울의 반사를 이용한 조명 Gibigiana

 

셋째는 '익명의 오브제(Anonymous Objects)'로 카스틸리오니 형제가 평소에 수집한 물건들을 전시해 놓았다. 우리가 자주 쓰는 가위, 안경, 손목시계 등의 제품은 누군가가 고안해낸 디자인의 결과물이다. 카스틸리오니는 디자이너를 알 수 없는 익명의 사물들에 관심을 가졌으며 곧잘 수집해왔다고 한다. "디자인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기능상 문제 없이 제 기능을 잘하는 것이라면 누가 디자인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언급한 그의 관점이 잘 들어났다.

 

만화 속 카스틸리오니의 디자인에선 '디아블로크' 만화에 오브제로 등장한 카스틸리오니 작품들을 전시했다. 몇 개의 작품은 앞선 전시룸에도 전시했던 터라 작품 배치에서 아쉬웠다. 만화라는 전시룸의 특징에 맞게 작품 뒤 벽면에는 작품을 만화형식으로 그린 그림이 부착되어 있는데, 작품의 용도와 적절하게 맞아 떨어져 보는 눈이 즐거웠다. 특히 고양이를 위해 만든 조명은 실제 고양이가 조명 아래 웅크리는 모습이 연상돼 웃음이 났다.

 

웅크린 고양이의 뒷모습이 앙증맞다

 

마지막으로 아킬레 카스틸리오니를 다룬 짧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전의 아킬레의 모습에 대해 얘기하는데, '어린 아이와 같은 호기심'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꼽았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은 인간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카스틸리오니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사용자를 위한 서비스를 디자인함에 있어서도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전시회를 다녀가다 > 오늘의 전시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재중 통화입니다  (0) 2020.02.09
파리의 플라뇌르  (0) 2020.02.09

댓글